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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평창-평화의 3평”시대 오나?
임도건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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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예술신문 칼럼니스트=임도건]새해 공식 업무가 시작된 이번 주. 미세하지만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오늘로 평창올림픽 D-30. 국제적 스포츠 제전을 국가도약의 기회로 삼고자 분주한 요즘이다. 마침 북한의 참여시사와 트럼프의 지지로 “3평”시대가 열릴지 궁금하다. 안팎의 난제도 적지 않다. MB정부의 원전수주와 군사 양해각서의 이면합의 여부와 관련, UAE 행정처장, 칼둔이 방한한 가운데, 미르재단 설립과정에서 대기업 총수들의 독대가 박 전 대통령의 특별활동비 관련 추가기소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궁금하다. 수많은 의혹과 주장만 반복될 뿐 스모킹 건이 없는 [DAS] 소유권 논란을 비롯해 교착상태에 빠진 [국민-바른]정당의 통합 및 호남계의 분당/신당창당 가능성도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남북 간, 정당 간, 한미일 간 평화는 넘어야 할 산이다. 평화가 그렇듯 자유도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님(Freedom is not free)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다. 

새해벽두부터 굵직한 쟁점들이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경계를 넘나든다. 답을 구하긴 어려운데 올바른 판단에는 도움이 된다. 검찰기소와 법원판결 및 그 사이에 거대한 국민정서가 역사 기류를 만들어 간다.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안보 상의 기밀유지, 그리고 정의와 진실의 사법부 저울이 절대 균형을 이룰 때 암전(暗轉)기의 대한민국은 새로워진다.

최우선 과제는 평창올림픽 성공개최와 북한의 태도변화다. 미국의 지지와 일본의 어부지리 관망이 한반도 평화에 일조하길 바라지만, 위안부 문제 재협상이 녹록치 않다. 강경화 장관이 간경화에 걸릴 정도다. 국민적 지지와 힘을 모을 때다.

당장 급한 게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과다. 그간의 북한외교가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제외한 “통미봉남”(通美封南)이었다면, 34번째 생일을 맞은 김정은의 신년사에는 “통미통남”이 담겼다. 핵개발 중단과 한미연합훈련의 일시중단을 요구하는 “쌍중단”은 시진핑의 쌍궤병행(雙軌竝行)노선의 우리식 번역어다. 미-중 양국을 달래면서 동시에 북한과 대화하는, 이른바 고차원 복합방정식을 풀어야 할 우리로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를 두고 보수일각에서 한미 연합훈련의 중지는 곧 한미 공조의 균열이며 자칫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며 엄살을 떤다. 애국심에 포장된 기우(杞憂)다. 이는 수세에 몰린 야당이 중-노년층의 안보불안 심리에 편승한 정치적 워딩(wording)일 뿐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다. 뿐만 아니라 남-남 갈등이 곧 안보위기라는 잣대에 근거, 북한의 꼼수에 속지 말아야 한다며, 대화자체를 원천봉쇄한다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경협을 통한 통일 해빙무드는 물 건너가고 만다. 무조건 퍼주기도 안 되지만, 미끼 없는 낚시도 현재로선 불가능하지 않은가?    
    
한·미가 동맹이지만 모든 게 일치할 수는 없다.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우리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한반도 운전대론이 부상하는 이유다. 북한의 해외자금 줄 차단과 통상압력 제재는 미국에게 맡기고, 우리는 스포츠 외교와 평화를 추구하면서 국제적 신뢰를 얻으면 된다.

근래 우리의 보-혁 갈등은 대북인식의 차이라기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 방법론의 차이라 해야 옳다. 공산주의 이념과 김정은의 독재체제가 나쁜 것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한편으로는 대화하고 다른 한편으론 한-미 공조 아래 자강정책을 펼치는 강온정책 외에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야당은 이상론을 내세워 공격하고, 여당은 현실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중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여야가 바뀌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늘 오전 10시,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2차 [통일 각] 회담까지 가지 않고 마무리해야 할 의제는 서너 가지다.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북한의 참여와 협조, 이 기간 동안 핵실험 중단 및 그에 대한 보상인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관광 재개 여부,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개성공단 개방을 통한) 새로운 경협 모색도 주요 안건이다.

이 모든 외양이 고단한 일상의 도시민들에겐 멀리 보일 수도 있으나, 국민소득 30,000만$ 시대를 앞둔 중산층들에겐 필수적인 시민의식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정쟁을 넘어 초당적 지지와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정답은 없지만 한시적 해답은 찾아야 한다. 여기가 바로 인문학의 설 자리다. 생(生)이란 몇 번의 터널을 통과하는 일. 누릴 때도 있지만 견디기도 해야 한다.
 
                             살다보면 살아낸다. 개인도 국가도 다르지 않다.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함께 정진하자.
                                                     attraversi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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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0 [20:35]  최종편집: ⓒ 아시아문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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