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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을 위한 인문학
임도건칼럼리스트 기사입력  2018/08/2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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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예일보 칼럼리스트=임도건]폭염과 폭풍이 지나갔다. 매미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아시안 게임도 중반. 축구의 힘겨운 4강 진출과 더불어 가을은 문학에 입문(入門)하기 좋은 인문학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 그 뿌리는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다. 농업환경이 척박했던 북방의 흉노(훈)족은 말 타고 강남(양쯔 강 이남)에 내려와 약탈을 일삼았다. 유목민의 겨울나기였다. 그들이 가을에 말을 살찌운 것은 겨울에 변방을 공격하겠다는 무서운 예고였다. 과연 말은 가을에만 살찌는 걸까?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말의 체중은 경마가 뜸한 9월말~10월초에 가장 많이 나갔다.

가을은 강렬했던 햇볕과 폭풍이 대추 한 알로 영그는 시기다. 자연에 새겨진 인간의 무늬를 탐하는 인문학(Humanities). 나이 50세에 풍부한 경험이라면 기본소양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축적된 지혜를 다루는 인문학이 평가 절하되는 이유가 뭘까? 입으로 썰을 푸는 입(口)문학에서, 전문적 공부를 위한 준비단계(入門), 혹은 흘러 다니는 소문이나 정보를 주워 먹는 입문(入聞)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사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의 대중화 노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허접한 주제에 오락요소를 가미해 시청률만 노리는 경박함도 한 몫 했다. 순수예술과 상업미술의 경계가 애매한 것은 생존의 이름으로 타협하면서 본령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돈 되면 뭐든 하는 자본주의에서, 정치권력과 경쟁구도에 서있는 재벌권력은 시장 만능주의의 힘을 빌려 자신의 취향과 욕구만족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인문학의 진위를 가리는 네 가지 잣대가 있다.  

첫째, 입(口)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다. ‘있어’ 보이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있어-빌리티’(It’s ability). 인문학은 단순히 입으로 그물을 치는 구라(口羅)가 아니다. 인문학이 인간의 보편가치를 무시하고 몇 마디 재치로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는 데 쓰인다면 무면허 약사가 약을 제조해 파는 것과 같다. 인문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그 근원을 진단하는 노력이다. 답을 얻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난사람이 아닌 “된”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다.

둘째,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고전에 입문(入門)하는 것도 인문학의 한 길이다. 주식보다 지식이, 검색보다 사색이 더 중요하지만 화장실에서의 사색은 금물이다. 변비증 환자가 실내에서 사색하는 동안 밖에 서있는 수험생들은 사색이 되어간다. 인문학은 출세를 위한 스펙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자 인간을 이해하는 공감대다. 주재료는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다.

셋째, 인문학은 성찰과 통찰의 이중주다.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손톱 밑의 가시와 신발 속 모래알갱이를 견디는 인내와 고통의 협연이다. 어질어야(仁) 옳은 인간(人)이 된다. 仁과 人은 어원이 같다.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역지사지와 박애주의다.

넷째, 인문학은 지하수다. 다양한 책이 인문학 배지를 달고 출판된다. 전문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너럴(일반)학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모조리 틀렸다고 하자니 부박하고, 무조건 옳다 하자니 예리한 맛이 없다.

집단지성은 인문학을 데이터와 함께 후험的(post priori)적으로  접근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본질 규명을 위한 비판적 해석으로, 사유의 탄력성을 길러주는 선험적 학문이라 정의했다. 인문학은 지하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체를 유지하고 지탱시켜 주는 원천이다. 모든 생명체의 유지기반이 바로 지하수다.

융합시대의 인문학은 식재료가 아니라 레시피(recipe)다. 먹방과 ‘요섹남’이 인기 있는 이유다. 문제는 재료의 구성. 잡다하게 섞으면 김치도 섞박지도 아닌 어정쩡한 겉절이가 된다. 정체성이 결여된 퓨전(fusion)은 혼란(confusion)만 초래한다. 인문학은 고전읽기에서 시작된다. 중세고전이 어려우면 유발 N.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권한다. 인류의 누적된 지혜를 다루는 인문학,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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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8 [07:51]  최종편집: ⓒ 아시아문예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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